올해 초, 아침에 눈을 떠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꽤 길게 이어졌습니다. 연인과의 관계도 삐걱거렸고, 직장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여가는데 그걸 해소할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기력이 이렇게 사람을 잠식하는구나,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무기력이 '기운 없음'이 아닌 이유 — 인지적 무기력무기력을 처음 겪을 때 대부분은 에너지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잠을 더 자면, 영양제를 먹으면, 쉬면 나아지겠지 싶은 거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된 건 조금 달랐습니다.무기력의 핵심은 에너지 저하가 아니라 인지적 무기력(Cognitive Helplessness)에 있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여기서 인지적 무기력이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부정적으로 굳어버리는..
영국 성인의 46%가 "내 자존감이 낮다"고 답했습니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영국도 우리랑 다를 게 없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소통을 위한 도구는 역사상 가장 많아졌는데, 정작 마음을 꺼내놓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소통이 어려운 건 성격 탓이 아닙니다영국에는 IAPT(Improving Access to Psychological Therapies)라는 공공 심리 치료 서비스가 있습니다. IAPT란 우울증, 공황 장애, PTSD 같은 정신 건강 문제를 겪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국민 심리 치료 시스템으로, 한국으로 치면 전국 구마다 심리 치료 센터가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15년간 일한 치료사가 꼽는 환자들의 가장 큰 공통 고민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동안 제 상태가 우울증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그냥 요즘 좀 지쳐 있나보다, 회사가 힘든 시기니까,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모임에 나가도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고, 사람들이 웃을 때 혼자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우울증의 시작: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집니다처음에는 단순히 외향적이지 않아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한 건 그 이상이었습니다. 누군가 연락이 오면 받기가 싫고, 카톡을 읽고도 답장을 못 보내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회사에서 번아웃이 겹치고 나서부터는 특히 심해졌는데,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가 계속 신경 쓰였습니다. 말을 꺼내려고 하면 비교당할 것 같아서 주저하다가 결국 말을 더듬는 상황까지 왔습니다.이런 증상을 사회적..
"인생이 꼭 행복할 필요는 없어, 그냥 사는 거지"라는 말을 듣고 과연 그런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늘 행복할 필요는 없다지만, 한 달 내내 기분 좋은 날이 단 하루도 없다면, 그게 과연 정상적인 걸까요? 무기력하고, 재미없고, "인생이 다 그렇지"를 입에 달고 살던 그 시절이 사실은 경미한 우울 상태였다는 걸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바쁠 때는 몰랐습니다. 생각할 틈이 없으면 아픈 것도 모르는 법이니까요.우울증 자각, 왜 우리는 스스로 모를까정신건강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감정 인식 불능증(Alexithymia)입니다. 여기서 감정 인식 불능증이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인지하거나 언어화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울증을 스스로 자..
처음에는 그저 제가 조금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단톡방에서 아무도 못 느끼는 미묘한 분위기 변화를 혼자 감지하고, 누군가 조용히 방을 나가면 혼자 자기 전까지 이유를 추측하며 뒤척이는 사람. 그게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뇌의 구조적 특성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생각보다 훨씬 나중의 일이었습니다.예민함의 정체, HSP란 무엇인가일반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그냥 감수성이 풍부하거나 소심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예민함에는 뇌과학적으로 명확한 근거가 있습니다.HSP(Highly Sensitive Person)란 전체 인구의 약 15~20%, 즉 6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나는 감각 처리 방식의 특성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단순히 감정이 풍..
예전부터 왜 나는 말을 재밌게 하지 못할까 아쉬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말을 잘하면 사람들이 저를 좋아해 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에너지를 쏟았는데, 정작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말을 재미있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 경청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일반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 인간관계에서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어느 10명짜리 모임에 갔는데 10명이 전부 각자 말하고 서로 듣지 않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 자리는 대화가 아니라 그냥 소음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 자리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공허함이 남았는데,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말 잘하는 사람은 분위기 메이커로는 인기가 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