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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기술 (소통, 소통 유형, 자기표현)

by vvdgray 2026. 5. 28.

영국 성인의 46%가 "내 자존감이 낮다"고 답했습니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영국도 우리랑 다를 게 없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소통을 위한 도구는 역사상 가장 많아졌는데, 정작 마음을 꺼내놓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소통이 어려운 건 성격 탓이 아닙니다

영국에는 IAPT(Improving Access to Psychological Therapies)라는 공공 심리 치료 서비스가 있습니다. IAPT란 우울증, 공황 장애, PTSD 같은 정신 건강 문제를 겪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국민 심리 치료 시스템으로, 한국으로 치면 전국 구마다 심리 치료 센터가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15년간 일한 치료사가 꼽는 환자들의 가장 큰 공통 고민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나는 왜 사람들에게 이렇게 휘둘릴까."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소통을 어려워하는 건 타고난 성격의 문제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시각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임상 현장에서 나온 분석은 명확합니다. 소통은 성격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소통이 어려운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건강한 소통 방식을 배운 적이 없는 것 (가정 교육에만 의존해 온 구조)
  • 방법을 알아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걱정과 두려움으로 입이 굳어버리는 것
  • 시도를 해봐도 충분히 연습하지 않아 기술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

저도 스스로 꽤 솔직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솔직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친구가 저를 화나게 했을 때 강해 보이고 싶어서 괜찮은 척했고, 대신 은근히 상대를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감정을 흘려보냈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그렇게 행동했던 관계는 하나도 남지 않았거든요.

내 소통 유형, 실제로 어디에 속할까

심리 치료에서는 사람의 소통 패턴을 분류할 때 수동적 소통, 공격적 소통, 수동-공격적 소통, 그리고 자기주장적 소통(assertive communication)으로 나눕니다. 여기서 자기주장적 소통이란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건강한 소통의 핵심 형태입니다.

쉽게 풀어보면 이런 식입니다. 동창회에서 친구가 "야, 예전엔 찌질했는데 요즘 잘 나가네"라고 말했을 때, 어색하게 웃으며 "고맙다" 하고 돌아와 이불을 걷어차는 것이 수동적 소통입니다. 반대로 즉시 언성을 높이며 맞받아치면 공격적 소통이고, 겉으로는 웃으면서 가시 돋친 말로 되돌려주는 것이 수동-공격적 소통(passive-aggressive communication)입니다. 수동-공격적 소통이란 직접적인 갈등은 피하면서도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패턴으로, 관계를 서서히 갉아먹는 방식입니다.

제가 상담을 받으면서 치료사와 가장 깊이 이야기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왜 그 순간에 솔직하게 내 감정을 말하지 못했는가. 답은 단순했습니다. 두려움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했다가 관계가 틀어질까봐,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미리 검열을 했던 것이죠.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에서는 이런 왜곡된 소통 패턴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CBT란 부정적인 사고 패턴과 그에 따른 행동 양식을 인식하고 수정해나가는 심리 치료 기법으로, IAPT에서 가장 주력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핵심은 치료사가 답을 주는 게 아니라, 환자 스스로 자신의 패턴을 발견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 쌓이는 것이 결국 자존감의 토대가 됩니다.

자기표현을 연습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

"화가 난다"와 "화를 낸다"는 다릅니다. 화가 나는 건 감정이고, 화를 내는 건 행동입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감정에 휩쓸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이 구분이 저에게는 꽤 오랫동안 헷갈렸습니다. 감정을 말하면 통제력을 잃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일상의 스트레스에 대처하며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합니다(출처: WHO). 이 기준에서 보면 소통 능력은 정신 건강의 핵심 구성 요소입니다.

또한 영국 정부가 2018년 외로움 담당 부처(Minister for Loneliness)를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외로움이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는 신체적 해악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정책 변화의 근거가 되었습니다(출처: GOV.UK).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입니다.

한국 사회는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고, 집단보다 개인의 감정을 앞세우는 것을 이기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할수록, 그리고 상담을 통해 돌아볼수록 이런 문화적 환경이 자기표현을 억압하는 구조적 조건이 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칭찬을 받아도 "아이고 별말씀을요"라고 튕겨내야 겸손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놓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존감은 결국 시도와 경험의 누적입니다. 아무 노력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자존감이 생기는 일은 없습니다. 인사를 일일이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보는 작은 실험 하나, 상대의 말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2초를 버티는 연습 하나, 이런 것들이 쌓여서 "나는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는 신뢰가 생깁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고 부릅니다. 자기효능감이란 특정 상황에서 자신이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주관적인 믿음으로, 반복적인 성공 경험을 통해 강화됩니다.

건강한 소통 방식을 배우지 못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배우지 못한 것은 다시 배우면 됩니다. 다만 그 과정이 적금처럼 느릴 뿐입니다. 저도 여전히 연습 중이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아마 비슷한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 번에 단호박이 되려 하기보다 오늘 한 번,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솔직하게 해보는 것으로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U9SHC4mB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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