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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갈등 원인과 해결법 (관계주의, 주체성, 갈등 해소)

by vvdgray 2026. 4. 23.

한국인이 집단주의적이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주변을 보면 자기 주관 없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으신가요? 저도 한동안 이 두 가지가 모순처럼 느껴졌습니다. 사회심리학자 허태균 교수의 연구를 접하고 나서야 그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은 집단주의자가 아니라, '관계주의자'라는 것입니다.

관계주의: 한국인의 심리적 뿌리

한국인의 심리를 집단주의(collectivism)로 설명하는 시각이 오랫동안 학계의 주류였습니다. 여기서 집단주의란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과 조화를 우선시하는 성향으로, 흔히 동아시아 전반을 묶어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일본인 지인들과 오래 교류하면서 느낀 것은, 한국과 일본이 생각보다 전혀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라고 묶기엔 행동 방식이나 인간관계의 결이 너무 달랐습니다.

사회심리학 관점에서 이를 더 정확히 설명하는 개념이 관계주의(relationism)입니다. 관계주의란 타인과의 일대일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성향을 뜻합니다. 집단 안에 묻히는 게 아니라, 개별 관계 하나하나가 소중한 것입니다.

이게 실생활에서 어떻게 드러나냐면,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기도 전에 "뭐 먹을 거야?" 하고 묻는 장면에서 잘 보입니다. 제가 직접 생각해보니, 그게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네가 뭘 고르느냐에 따라 내 선택도 바뀔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였던 겁니다. 처음엔 그냥 습관인 줄 알았는데, 꽤 깊은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한국인의 관계주의적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타인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선택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경향
  • 원칙보다 관계를 우선시하는 상황적 판단
  •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관계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인식
  • 상대방의 존재감을 크게 인식하고, 자신의 존재감도 강하게 드러내려는 성향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 방식에 관한 연구에서도 상호의존적 자기 개념(interdependent self-construal)이 단순한 집단 귀속이 아닌 관계 네트워크 속 개인으로 표현된다는 점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주체성: 창의력의 원천이자 갈등의 씨앗

한국인이 창의적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좀 낯설었습니다. 창의성이나 개인의 주체성(agency)은 서양 개인주의 문화에 더 어울리는 개념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체성이란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인하고 확대하려는 심리적 성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와플 기계로 온갖 음식을 만들어내거나, 제품 개발자도 몰랐던 사용법을 SNS에 올리는 게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음식을 가위로 자르는 것도, 드라이브스루를 일상으로 만든 것도, 결국 '정해진 틀이 재미없어서' 시작된 유연한 사고에서 비롯된 겁니다.

저희 부모님을 보면 이 주체성이 얼마나 강한지 체감합니다. 두 분 모두 자신만의 방식과 논리가 확고해서, 대화하다 보면 서로 자기 생각이 맞다고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 제가 직접 그 안에 있으니 더 잘 느껴지는데, 그게 때론 소모적이지만 동시에 왜 우리 사회가 빠르게 움직이는지도 설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매뉴얼대로만 하는 조직은 느릴 수밖에 없는데, 한국인은 그 환경 자체를 흡수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냅니다.

문제는 이 주체성이 역방향으로 작동할 때입니다. 공사 현장에서 설계도를 무시하고 '내가 보기엔 이게 낫겠다' 싶어 바꾸는 식의 일탈이 일상 곳곳에서 벌어집니다. 사회 전체의 안전망과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동이 결국 같은 심리에서 출발한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국내 창의성 연구에서도 한국인의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 능력은 높게 평가되는 반면, 수렴적 사고(convergent thinking) 즉 정해진 기준 안에서 최적을 찾는 능력과의 균형이 과제로 제시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갈등 해소: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으려면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분명히 충분히 설명했는데, 상대방이 여전히 다른 생각을 고집할 때 왜 저렇게 이해를 못 하지, 하고 답답함이 밀려오는 경험. 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한국 사회 갈등의 심리적 출발점이라는 걸, 이번에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한국인의 설득 방식은 대체로 이렇게 흘러갑니다. 먼저 정보를 제공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합리적인 정보를 전달하면, 상대방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거라고 믿는 겁니다. 그런데 상대가 바뀌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머리가 나쁜 거야, 아니면 나쁜 사람인 거야, 하는 방향으로 감정이 흐릅니다. 인터넷에서 '~충'이라는 표현이 넘쳐나는 게 이 심리적 과정의 결과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아예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분류해버리는 것입니다.

저 역시 솔직히 이 패턴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돌아보면, 저야말로 주체성 강하고 자기 확신이 넘치는 전형적인 한국인인 것 같습니다. 나는 합리적이다, 나의 판단이 맞다는 전제를 깔고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설득이 아니라 강요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갈등 해소의 출발점은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에 있습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자신의 사고 틀을 상황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으로, 심리학에서 정서 조절 및 대인관계 적응력과 밀접하게 연결된 개념입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들었을 때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분류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게 말은 쉬운데, 주체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실천이 어렵습니다.

허태균 교수가 언급한 할아버지·할머니의 반응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손주가 이상한 걸 하면 "왜 그래?" 대신 "요즘은 그러고 노니? 재밌어?" 하고 묻는 방식. 판단 없이 관찰하는 것. 저도 애정이 깊을수록 오히려 더 설득하려 든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이 부분이 특히 와닿았습니다.

결국 한국 사회가 이 정도의 경제 발전과 이 정도의 사회 갈등을 동시에 이룬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관계주의와 주체성이라는 같은 심리가 두 가지를 모두 만들어낸 겁니다. 그렇다면 갈등을 줄이는 방법도 결국 이 심리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방향을 다듬느냐에 달린 문제입니다. 나와 다른 것을 넘어 관용의 문화가 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 자신부터 조금씩 점검해보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xF3oWdBv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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