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소파에 누웠는데 딱히 뭘 할 에너지도 없는 그 애매한 시간,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 시간이 오면 습관처럼 게임을 켭니다. 근데 어떤 날은 게임을 끄고 나서 개운하고, 어떤 날은 괜히 한 것 같은 찜찜함이 남더라고요. 그 차이가 뭔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꽤 의미 있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스트레스 관리에 게임이 도움이 된다
게임을 좋아한다고 하면 아직도 "그게 무슨 도움이 돼?"라는 반응을 마주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정신의학 연구에서는 게임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cortisol) 수치를 낮춘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코티솔이란 신체가 스트레스 상황에 반응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이 수치가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수면 장애나 불안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하는 동안 이 수치가 낮아지고 심박수와 긴장도가 함께 떨어진다는 거죠.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건 몰입(flow) 상태에 관한 부분입니다. 몰입이란 어떤 활동에 완전히 빠져들어 시간 감각조차 사라지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게임을 하는 동안 이 몰입 상태에 들어가면, 평소 머릿속을 맴돌던 걱정이나 반추적 사고가 자연스럽게 차단됩니다. 제가 직접 느껴봤는데, 복잡한 생각이 많은 날일수록 게임 한 판 하고 나면 머리가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뭔가 대단한 걸 한 게 아닌데도요.
게임이 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3D 플랫폼 게임을 노인 참가자들에게 일정 기간 진행시켰더니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회색질이 실제로 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 정보). 전전두엽이란 판단, 계획, 감정 조절 등 고차원적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입니다. 캐주얼 퍼즐이나 전략 게임을 즐긴 집단에서 문제 해결 능력과 집중력이 향상됐다는 연구도 있고요.
TCI 검사로 파악하는 나의 기질
한 유튜브 영상에서는 자신의 기질에 맞는 게임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MBTI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더라고요. 근데 저는 이 부분에서 살짝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에서 실제로 말하고 있는 개념, 그러니까 자극 추구 성향이 높다거나, 반복적인 게 지루하다거나, 경쟁을 즐긴다거나 하는 것들은 사실 MBTI보다 TCI 검사에서 다루는 기질 개념에 훨씬 가깝습니다.
TCI 검사란 기질 및 성격 검사(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로, 타고난 유전적 기질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을 분리해서 분석하는 심리검사입니다. 자극추구(Novelty Seeking), 위험회피(Harm Avoidance), 사회적 민감성(Reward Dependence), 인내력(Persistence)의 4가지 기질 차원과, 자율성·연대감·자기초월의 3가지 성격 차원을 함께 측정합니다.
제가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직접 TCI 검사를 해봤는데, MBTI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MBTI가 "나 이런 유형이야"로 끝나는 느낌이라면, TCI는 "아, 내가 왜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입체적인 지도 같았습니다. 특히 자극추구 기질 수치를 확인하고 나서, 제가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환경에서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이유를 처음으로 납득하게 됐을 정도입니다.
MBTI는 심리 상담에서 보조적인 수단으로만 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왕 자신의 기질을 파악해서 게임 선택이나 일상 스트레스 관리에 활용하고 싶다면, TCI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훨씬 실용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질에 맞는 게임이 따로 있다
그렇다면 기질에 따라 어떤 게임이 잘 맞을까요. 이건 정답이 있다기보다, 자신의 반응을 관찰하는 게 핵심입니다. 실제로 게임을 끝내고 나서 기분이 어떤지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걸 알 수 있습니다.
자극추구(Novelty Seeking) 기질이 높은 분들은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오히려 몰입이 깊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빠르게 흥미를 느끼고, 반복적인 구조엔 금방 지루함을 느끼죠. 이런 분들에게는 소울라이크(Soulslike) 장르처럼 실패와 재도전을 반복하며 성취를 쌓아가는 게임이 잘 맞습니다. 소울라이크란 높은 난이도와 죽음을 통한 학습을 핵심 메커닉으로 하는 게임 장르를 말합니다.
반면 에너지 레벨이 낮거나 새로운 자극 자체가 부담스러운 상태라면 전혀 다른 선택이 필요합니다. 스타듀밸리처럼 경쟁 요소 없이 자신만의 리듬으로 진행할 수 있는 힐링 시뮬레이션 게임이 효과적입니다.
기질별로 어떤 게임이 맞는지 큰 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자극추구 기질이 높은 경우: 높은 난이도의 액션 RPG, 경쟁 기반 멀티플레이어 게임
- 위험회피 기질이 높은 경우: 싱글 플레이 중심의 스토리 게임, 힐링 시뮬레이션
- 인내력 기질이 높은 경우: 장기적인 성장 곡선이 있는 전략 게임, 대전략 게임
-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경우: 협력 기반 온라인 소셜 게임, 커뮤니티 중심 MMORPG
저는 개인적으로 대전략 게임 쪽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도시나 국가를 경영하면서 전지전능한 기분을 느끼는 그 감각이 묘하게 현실의 통제감 부재를 보상해 주더라고요. 그리고 멀티보다는 싱글 위주로 하는 게 저한테는 훨씬 맞았습니다. 게임 안에서만큼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아도 되니까요

결국 게임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지의 답은,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기질을 파악하고, 그 기질에 맞는 게임을 골라서, 미리 계획한 시간 안에 즐기는 것. 이게 갖춰졌을 때 게임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꽤 좋은 회복 도구가 됩니다. TCI 검사를 한 번도 받아보지 않으셨다면, 가까운 상담 기관에서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저한테는 그 검사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생각보다 훨씬 큰 나침반이 되어줬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심리 조언이 아닙니다. 정신건강 관련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시길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