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5년 동안 저를 괴롭힌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겼지만, 사실 그 말은 제 안에서 조용히 곪고 있었습니다. 왜 그 말이 그토록 오래 저를 따라다녔을까요. 그 답을 찾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분노하는 이유는 동의하기 때문입니다후배가 저에게 대놓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더 예쁘고 성적도 좋으니 선배보다 우월하다고요. 그 자리에서 저는 "하나도 안 타격받는다"는 표정으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5년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뭐였을까요.나중에 상담 과정을 통해 깨달은 건, 제가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수용(cognitive acceptance)이라고 합니다. 인지적 수용이..
처음 공부를 잘 하게 됐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저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참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어도, 수학도, 과학도 참 흥미롭고 재미있었죠. 그래서 맨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들한테 끊임없이 질문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성적을 받고, 높은 성적 때문에 주변에서 칭찬해주자 저는 모범생 지위를 잃는 게 두려워졌던 것 같습니다. 그 때부터 성취라는 결핍이 저를 갉아먹기 시작하고, 완벽주의가 생겼습니다. 1등이 되기 위해, 성취를 위해 공부했죠. 그때부터 아마 공부는 제게 즐거움이 아닌 생존의 수단이 되었을 겁니다. 회피하고 싶고 싫은 대상이 된 거죠. 결핍을 쫓는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은 아니었습니다.완벽주의가 일을 망치는 이유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뭔가 중요한 ..
오랜 시간 동안 저는 제 예민함을 성격의 문제로만 여겼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하루가 망가지고, 운전 중 끼어드는 차 한 대에 심장이 쿵 내려앉던 날들도 말이죠. 그런데 그게 성격이 아니라 편도체가 지나치게 자주 활성화되는 뇌의 반응 패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이상하게도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분노는 강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저는 화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는 그게 원칙이 있고 기준이 높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냥 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분노와 두려움은 다른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바로 편도체(amygdala)의 활성화입니다. 편도체란 뇌의 측두엽 안쪽에 자리한 아몬드 모양의 구조물로, 위협적인 상황을 감지하면 즉각 신..
"인생이 꼭 행복할 필요는 없어, 그냥 사는 거지"라는 말을 듣고 과연 그런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늘 행복할 필요는 없다지만, 한 달 내내 기분 좋은 날이 단 하루도 없다면, 그게 과연 정상적인 걸까요? 무기력하고, 재미없고, "인생이 다 그렇지"를 입에 달고 살던 그 시절이 사실은 경미한 우울 상태였다는 걸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바쁠 때는 몰랐습니다. 생각할 틈이 없으면 아픈 것도 모르는 법이니까요.우울증 자각, 왜 우리는 스스로 모를까정신건강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감정 인식 불능증(Alexithymia)입니다. 여기서 감정 인식 불능증이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인지하거나 언어화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울증을 스스로 자..
충동적이고 산만한 게 꼭 나쁘기만 한 걸까요? 저는 한동안은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중을 못 한다, 충동적이다, 계획성이 없다. 그게 단점이라고만 여겼는데, 어느 날 문득 그 산만함이 오히려 저를 살아남게 한 힘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ADHD를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하나의 특성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ADHD, 이렇게 작동합니다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이 ADHD를 설명할 때 자주 쓰는 비유가 있습니다.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여기저기 튀어다니는 모습입니다. 이게 바로 주의조절 장애인데, 여기서 주의조절이란 특정 대상에 집중을 유지하면서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내는 뇌의 실행 기능을 말합니다.저도 기질 검사에서 자극 추구 점수가 상당히 높게 나온 적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