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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 더 어른스럽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제가 가장 자주 화를 냈던 시기가, 동시에 제 확신이 가장 강했던 때였습니다. 일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요. 이 글은 그 연결고리를 짚어보고, 실제로 화를 줄이는 데 써먹을 수 있는 방향을 정리한 것입니다.

알고리즘 버블이 우리를 더 화나게 만드는 이유
저희 아버지는 매일 저녁 정치 유튜브를 보십니다. 처음에는 관심 있는 콘텐츠를 몇 개 클릭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비슷한 논조의 영상만 연이어 추천받고 계십니다. 그리고 자기 의견과 조금이라도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금방 언성이 높아지십니다. 예전에는 이게 단순히 성격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르게 보입니다.
이른바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입니다. 여기서 필터 버블이란, 추천 알고리즘이 사용자의 성향에 맞는 정보만 반복 노출함으로써 자신과 다른 시각을 점점 접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디지털 방 안에 갇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자연스럽게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강화한다는 점입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기존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보면 볼수록 내가 옳다는 확신이 커지고, 반대 의견이 들어오면 그만큼 더 강하게 방어 반응이 일어납니다. 요즘 세대간, 계층간 갈등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정보 환경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한 셈입니다.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조사 결과, 한국은 사회적 갈등 지수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King's College London Policy Institute). 빠른 변화 속도와 조급한 문화적 기질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미디어 환경이 갈등 구조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를 탓하기 전에, 아버지가 매일 앉아 있는 그 알고리즘 환경을 먼저 봐야 했던 것 같습니다.
-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성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 필터 버블과 확증 편향이 결합되면 반대 의견 자체가 공격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 이처럼 SNS는 현대 사회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원인 중 하나입니다
화가 줄지 않는 진짜 이유 — 자각의 부재
솔직히 이건 저한테도 뜨끔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저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자주 했습니다. 일을 잘하고 싶었고, 그 기준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기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면 '왜 저렇게 게으르게 일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생각이 쌓이면 화가 됐습니다. 결국 번아웃(Burnout)이 찾아왔을 때서야 멈췄습니다. 스스로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가장 손해를 본 건 상대방이 아니라 저 자신이었습니다.
화가 일어나는 메커니즘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상대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화가 납니다. 여기서 핵심은 화를 참는 것이 아닙니다. 화가 나는 순간을 먼저 알아채는 것, 즉 메타인지(Meta-cognition)가 필요합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사고와 감정 상태를 스스로 관찰하는 능력으로, 심리학에서는 감정 조절의 첫 번째 단계로 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화가 이미 터진 다음에는 조절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전, '지금 나 화가 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순간입니다. 그 자각이 생기면 선택지가 생깁니다. 화를 낼 것인가, 잠시 거리를 둘 것인가. 자각 없이 터진 화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기도 어렵습니다.
친구와 대화하다가 기분 나빴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 말에 공감해주지 않고 틀렸다고 지적했을 때였는데, 화나고 억울한 마음이 며칠을 갔습니다. 돌아보니 제 생각이 부정당했다는 느낌에 화가 났던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도 틀릴 수 있고, 저도 틀릴 수 있는데 저는 그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죠.
- 화를 줄이려면 참는 것보다 '지금 화가 나고 있다'는 자각이 먼저입니다
- 자각이 없으면 선택이 없고, 선택이 없으면 책임도 없습니다
- 일에 대한 집착,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자각은 더 어려워집니다
어른됨이란 맞출 줄 아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자기 확신이 흔들리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확신 없는 사람, 자신감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확신이 강했던 시절에 저는 더 자주 화를 냈고,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이 충돌했습니다. 확신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공간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조건을 생각해보면, 흔히 경제적 독립이나 나이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심리적 성숙도(Psychological Maturity)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심리적 성숙도란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고 타인의 입장을 수용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을 말합니다. 결혼을 했어도, 나이가 많아도, 상대방에게 맞추지 못하고 받기만 원한다면 관계의 구조는 부모-자녀 관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해가 사랑이다'라는 법륜스님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내 방식으로 좋아하는 것은 사실 욕망에 가깝습니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진짜 이해입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이고, 거기서 한 발 더 가서 '그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고 느끼는 것이 이해입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이 한 가지만 바뀌어도 화가 나는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 어른됨은 나이가 아닌 심리적 성숙도, 즉 타인의 입장을 수용하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 이해는 느낌이 아니라 상대의 맥락을 파악하려는 의식적 노력입니다
요즘 저는 동료나 애인과 맛있는 밥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거창하게 해내고싶은 집착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 사소한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매일을 연습처럼, 어제까지는 연습이고 오늘이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오늘의 일들에 과하게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이 관점이 생기고 나서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졌고, 그만큼 남에게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자기확신이 강화되는 현실을 인지하고, 자신의 감정 상태를 먼저 알아채고, 상대방의 맥락을 이해하려는 연습을 반복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쌓이면 화를 덜 내는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 연습해나가고 있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