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호감이란 게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생기거나 말을 재밌게 하거나, 아니면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요.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 착각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상처를 받고 나서야, 문제의 뿌리가 밖이 아니라 제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진정성과 겸손이 호감의 열쇠
캐나다 캘거리 대학의 이기범 교수를 포함한 성격 심리학 연구자들은 호감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정직과 겸손을 꼽습니다. 여기서 정직과 겸손이란 단순히 착하게 구는 태도가 아니라, 성격 심리학에서 말하는 HEXACO 모델의 H 요인, 즉 Honesty-Humility 차원을 가리킵니다. HEXACO 모델이란 인간의 성격을 여섯 가지 핵심 차원으로 설명하는 이론으로, 그중 H 요인은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조종하거나 과장하지 않는 성향을 의미합니다. 이 수치가 낮은 사람이 눈치가 빠르면 영리하게 계산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자존감이 높으면 나르시시즘으로 흘러갑니다. 반대로 H 요인이 높은 사람은 눈치가 좀 둔해도 신중하다는 인상을 주고, 자존감이 낮아 보여도 주변에서 오히려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부분이 참 맞는 말이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제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진정성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솔직함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나오면, 결국은 관계를 갉아먹었습니다. 그때의 갈등을 돌아보면 대부분 제가 무언가에 대해 우열을 매기는 흑백논리를 가지고 있을 때 터졌습니다. 성적이 높으면 똑똑한 사람, 낮으면 무시해도 되는 사람. 이런 논리는 굉장히 취약합니다. 제가 성적이 나빠지는 순간, 그 논리에 따르면 저도 무시당해도 좋은 사람이 되니까요.
진정성이란 결국 내 속마음을 말하되, 상대방과 나 모두의 품격을 지키는 성숙함입니다. 이것이 호감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라는 점은 여러 대인관계 연구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됩니다. 호감의 가장 강력한 반대말인 모멸감(대리감)은 진정성이 결여된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출처: 캘거리 대학교 성격 심리학 연구실).
진정성 있는 호감을 만들기 위해 제가 생각하는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속마음을 말할 때 상대를 평가절하하지 않을 것
- 모든 사람의 특성을 우열 없이 가치중립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할 것
- 나 자신에게 먼저 너그럽게 대하는 자기긍정에서 출발할 것
특히 세 번째 항목이 저에게는 가장 어려웠습니다. 스스로에게 혹독한 사람은 남에게도 결국 같은 기준을 들이밀게 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나를 여유 있게 바라볼 줄 알게 됐을 때 비로소 주변 사람들도 조금 더 편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정의 없이 착한 사람은 왜 만만해지는가
착하면 좋은 사람인데, 왜 만만해질까요. 제가 한동안 그 질문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는데, 지금은 압니다. 나만의 정의(definition of justice)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기 정의란 내가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서부터는 선을 넘는 것인지, 스스로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기준선을 말합니다.
우호성(Agreeableness)이라는 성격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우호성이란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려는 성향의 강도를 측정하는 개념입니다. 우호성이 지나치게 높으면,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갈등을 피하기 위해 저 자신의 선을 계속 뒤로 물리게 됩니다. 그 결과 착한데 만만한 사람이 됩니다.
저도 직장 초반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선을 넘는 말에도 웃어 넘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게 쌓이면 상대방은 저를 편한 사람이 아니라 만만한 사람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자기 정의를 갖는다는 건 남을 배척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겁니다.
- 직장은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동료의 기쁨과 슬픔 정도는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 곳이다.
- 급여는 상이 아니라 내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 도저히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집착하지 않는다.
이런 기준들이 명확할수록, 부조리한 상황이 오면 그게 선을 넘는 것임을 빠르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저를 만만하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인기 있는 사람 = 남을 빛내주는 사람
주변에 이런 사람이 꼭 한 명씩은 있습니다. 딱히 잘나 보이지 않는데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 제가 그 사람들의 공통점을 관찰해 보니,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빛나도록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강화(social reinforcement)라고 부릅니다. 사회적 강화란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긍정적인 반응을 돌려줌으로써, 그 사람이 더 이야기하고 싶고 더 가까이 있고 싶게 만드는 심리적 메커니즘입니다. 정신분석 분야에서 상담가를 훈련할 때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눈 맞추기, 고개를 사선으로 끄덕이기, 그리고 적절한 감탄사를 넣어 주기. 이 세 가지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 사람이 나를 존중한다'는 인상을 만들어 냅니다.
실제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경청 능력과 비언어적 공감 표현이 호감 형성에 언어적 표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그때 느낀 건, 저는 말을 잘하려고는 노력했는데 잘 듣는 법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말하기 학원은 많아도 듣기 학원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관심을 받고 싶으면, 먼저 관심을 주는 것. 이게 호감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원칙입니다.
착하고 겸손하지만 자존감이 낮아 보이는 사람에게는 왠지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반면, 정직하지도 않은데 자존감만 높은 사람에게서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냄새가 납니다. 나르시시즘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타인에 대한 공감 결핍이 결합된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이 차이가 결국 호감과 비호감을 가르는 결정적인 지점이 됩니다.
결국 호감이란 화려하게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는지. 이걸 알아야 남을 대할 때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던 예전 저에게 지금 한 마디 해줄 수 있다면, 그 에너지의 절반만 나와의 대화에 써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