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상담을 권유하면서도 반은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파트너가 거부할 때마다 "괜찮아, 우리끼리 해결하면 되지"라고 스스로를 달랬는데, 그게 회피였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같은 싸움이 반복될 때,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겠습니다.

MBTI만 믿었던 저의 착각
저는 한동안 MBTI 하나로 관계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MBTI가 뭐예요?"라고 묻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가 됐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서 공식 MBTI 검사를 받아보니, 인터넷에서 무료로 하는 검사와는 결과가 꽤 다르게 나왔습니다. 제가 직접 비교해봤는데, 공식 검사는 문항 수도 많고 응답 신뢰도를 자체적으로 보정하는 과정이 있어서 훨씬 정교했습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란 개인의 인식과 판단 방식을 4가지 축으로 분류해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나타내는 성격유형검사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성격'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황에 따라, 나이가 들면서, 심지어 직업 환경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상담사들이 MBTI 결과를 보조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흔히 "우리 성격이 너무 달라서 맞지 않아"라고 말하는 커플들이 많은데, 정작 검사를 해보면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아서 놀라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TCI 검사가 보여준 나의 기질과 성격
상담 현장에서 진짜 무게감 있게 다루는 검사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TCI 검사입니다.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란 타고난 유전적 기질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을 분리하여 분석하는 심리검사입니다. 쉽게 말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가"와 "나는 살면서 이렇게 변했는가"를 구분해서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TCI는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 4가지 기질: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
- 3가지 성격: 자율성, 연대감, 자기초월
이 중에서 제가 특히 눈여겨본 항목은 자극추구와 예기불안이었습니다. 예기불안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는 사람도 내면에 이 수치가 높게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저 역시 상담에서 이 부분을 짚어 듣고 꽤 당황했습니다. "저는 별로 불안하지 않은데요"라고 말했다가 검사 결과지 앞에서 말문이 막혔거든요.
MBTI보다 TCI가 훨씬 입체적으로 저를 설명해줬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입체성 덕분에 파트너와의 갈등 구조가 왜 반복되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효과와 커플 상담 유의할 점
저는 처음에 커플 상담이라면 당연히 둘이 같은 상담사에게 받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상담사들이 공통적으로 권장하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먼저 각자가 개인 상담사에게 10회 내외의 개인 상담을 받고, 그 이후에 별도의 상담사에게 커플 상담을 받는 순서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상담사에게 둘 다 털어놓게 되면, 상담사가 어느 한쪽 편을 들기 어렵고 내담자 입장에서도 상대가 알아챌까 봐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내담자(來談者)란 상담을 받기 위해 전문가를 찾아오는 당사자를 뜻하는데, 내담자가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환경이 상담의 효과를 결정합니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상담이 오히려 갈등을 키우는 자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상담심리학회에 따르면, 커플 및 가족 상담의 효과는 개인 심리적 안정 기반이 갖춰진 이후에 더욱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상담심리학회). 제가 직접 상담을 받으면서 느낀 것도 정확히 이것이었습니다. 혼자서 먼저 내 감정의 뿌리를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상대의 행동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비용이 부담된다면, 이 방법을 먼저 확인하세요
심리 상담을 권유하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반응이 "비싸잖아요"입니다. 맞습니다. 민간 상담소의 경우 회당 5만 원에서 15만 원 이상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공 제도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걸 모르는 분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심리바우처 사업을 이용하면, 소득 기준에 따라 상당 부분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심리바우처란 국가가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로,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신청이 가능합니다. 거주하는 지자체에서도 별도의 무료 또는 저비용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니, 주민센터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먼저 문의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제 경험상 이 제도를 모르고 비용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아는 것만으로도 선택지가 달라집니다.
같은 다툼이 반복된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두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구조를 못 보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도 수차례 상담을 권유하다 거절당하면서 지쳐갔는데, 막상 받고 나서야 왜 진작 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비용 걱정이 있다면 심리바우처부터 확인해보고, 개인 상담 10회를 채운 뒤 커플 상담으로 넘어가는 순서를 꼭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제 블로그에도 심리바우처 신청 방법을 정리해두었으니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