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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했습니다. "모든 의견은 추측에 불과하다"는 말이 혼란스럽게 들리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위로가 되었을까요. 대학 시절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제가 확신했던 것들, 그 확신이 오히려 저를 얼마나 외롭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매일 추측을 합니다
저도 처음엔 연역법과 귀납법만이 논리의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연역법(deduction)과 귀납법(induction) 사이에 제3의 추론 구조가 있습니다. 바로 가추법(abduction)입니다. 가추법이란 대전제는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결론을 먼저 확인한 뒤 소전제를 역으로 추론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그럴 걸"이라는 추측의 논리 구조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길바닥이 젖어 있습니다. "비 왔나 보다"고 생각하죠. 이게 가추법입니다. 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는 대전제는 알고 있고, 땅이 젖은 결과를 확인했으니 비가 왔을 거라고 추측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틀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 물을 뿌렸을 수도, 스프링클러가 작동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19세기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는 이 가추법이야말로 모든 기호 해석과 인식의 핵심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호 해석(semiotics)이란 어떤 현상이나 기호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퍼스에 따르면 우리가 장미꽃을 보고 "장미"라고 인식하는 지각(perception) 자체도 이미 가추법적 추론입니다(출처: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꽃잎 모양, 가시, 줄기를 보고 "장미일 거야"라고 추측하는 것, 그게 우리 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라는 얘기입니다.
제가 이 개념을 처음 제대로 이해했을 때 꽤 당황했습니다. 제가 확신했던 수많은 "사실들"이 사실은 이 가추법으로 형성된, 틀릴 수도 있는 추측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가추법이 작동하는 일상의 예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식당 앞에 줄이 길다 → "맛집이겠지"라고 추측 (알바 동원이나 다른 이유일 수 있음)
- 낚싯대의 찌가 내려간다 → "물고기가 물었겠지"라고 추측 (신발이나 수초일 수 있음)
- 동료 얼굴이 빨갛다 → "술 먹었겠지"라고 추측 (열이 나거나 홍조증일 수 있음)

아집, 추측을 진리로 착각할 때 생기는 일
대학 때 저는 어떤 사상이나 가치에 꽂히면 완전히 몰입했습니다. 그 사상이 맞는 것 같으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강요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내 말이 맞으니까 이렇게 해"라는 식이었죠. 그 결과는 갈등과 고립이었습니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집(我執)의 전형적인 형태였습니다. 아집이란 자신의 견해나 의견을 진리와 동일시하며 집착하는 인지적 편향 상태를 말합니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 수도사가 제자에게 남긴 말이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조심해라. 그런 사람은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보다 먼저 죽게 하는 법이다." 자신의 신념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폭력도 불사하는 사람, 우리 주변에서 그 모습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며칠 전 친구와 대화하다 기분이 언짢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친구가 자신의 의견을 제게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나는 왜 그 말이 불편했을까"를 생각해보니, 사실 어느 정도는 그 의견을 진리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제가 과거에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인지심리학에서 이러한 현상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이미 믿는 것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박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심리적 경향입니다. 가추법으로 형성된 의견이 확증 편향과 만나면, 추측이 확신이 되고 확신이 아집이 됩니다(출처: 미국 심리학회(APA)). 이 과정이 무서운 건 본인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자기참조, 내 의견의 논리 구조를 들여다보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기참조(self-reference)입니다. 자기참조란 자신의 사고 과정 자체를 관찰하고 점검하는 메타인지적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지금 어떤 논리로 이 의견을 형성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들여다보는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대전제 대부분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라온 환경, 읽은 책, 만난 사람들이 심어준 것들이 대전제로 작동하고, 거기서 자동으로 가추법이 돌아갑니다. 그러니 "이건 내 의견이야"라고 확신하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주입된 의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가 제시한 이 개념은, 어떤 명제가 과학적이려면 틀릴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좋은 의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의견이 오히려 더 강한 의견입니다. 언제든 새로운 근거 앞에서 유연하게 수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누군가의 말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도 지금 자기만의 가추법을 돌리고 있는 거야. 틀릴 수 있어. 나도 마찬가지고." 그 생각이 생기는 순간, 불쾌함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의견과 사실의 경계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내 의견이 어떤 구조 위에 세워져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 이 습관이 생기고 나서 인간관계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의견을 꼭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내가 지금 추측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추측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달라집니다. 아집과 확신 사이의 거리는, 사실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거리를 만드는 건 지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