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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극복법 (지속가능성, 케렌시아, 자기인식)

by vvdgray 2026. 4. 16.

저도 처음엔 열심히 사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와 씨름하고, 대학에서는 아르바이트와 학업과 동아리를 동시에 굴리며 버텼습니다. 그렇게 직장까지 왔을 때 찾아온 건 성취감이 아니라 번아웃(burnout)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열심히 살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 공식은 절반만 맞았습니다.

 

지속가능성: 높이보다 면적이 중요하다

일의 성과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얼마나 강도 높게 했는가만 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강도(높이)와 지속 시간(가로 길이)을 곱한 값, 즉 면적이 진짜 성과를 결정합니다. 이건 수학적 비유가 아니라 현실 이야기입니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란 어떤 상태나 행동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마라톤에서 첫 5km를 전력 질주하는 사람이 완주하지 못하듯, 삶에서도 지속 가능한 페이스가 결국 더 먼 거리를 갑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차이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번아웃이 오기 전, 저는 늘 타이트하게 할 일을 맞춰가며 아슬아슬하게 끝내는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해야 하는 것들은 억지로 끝냈고, 하고 싶은 것들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이라는 말로 미뤘습니다. 그 나중은 결국 오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연소(burnout)가 축적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번아웃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자기 조절 실패'와 '자원 고갈'이 꼽혔습니다(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여기서 자원 고갈이란 신체적 에너지뿐 아니라 심리적 에너지가 재충전 없이 소모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저는 그 상태를 몸으로 먼저 알았습니다.

지속 가능한 수준에서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결국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만든다는 말이 처음엔 와닿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게 뭔가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방식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점검해볼 핵심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수면 시간과 컨디션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는가
  • 하루 심리적 에너지 총량을 대략 알고 있는가
  • 지금의 페이스를 1년 뒤에도 유지할 수 있는가
  •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지 않은가

케렌시아: 나를 쉬게 할 공간을 미리 만든다

번아웃 이후 저는 한동안 어디서 쉬어야 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집에 있어도 쉬는 느낌이 없었고, 카페를 가도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한테는 케렌시아(querencia)가 없었던 겁니다.

케렌시아란 원래 스페인 투우 경기장에서 소가 극도로 지쳤을 때 잠깐 물러나 숨을 고르는 특정 공간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현대적 맥락에서는 심리적 안전지대, 즉 긴장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물리적·심리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내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전환되는 곳입니다.

일반적으로 쉬고 싶으면 그냥 집에서 쉬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공간이 바뀌어야 뇌의 각성 수준이 달라지는 것을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환경 심리학(environmental psychology)에서도 확인된 원리로, 특정 공간이 특정 심리 상태를 유도한다는 개념입니다. 환경 심리학이란 물리적 환경이 인간의 감정·행동·인지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시간대별로 케렌시아를 나눠보면 좋습니다. 나에게 30분, 1시간, 반나절이 생겼을 때 가는 케렌시아를 세 가지로 나누어 두는 것입니다. 30분이 생기면 아파트 단지 끝 벤치, 한 시간이 생기면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두고 앉아 있을 수 있는 목욕탕, 반나절이 생기면 무궁화 기차를 타고 가까운 다음 역까지 다녀오는 짧은 이동. 거창한 여행이 아니어도 됩니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혹시 어떤 공간이 자신에게 맞는지 떠오르지 않는다면, 핸드폰을 들고 나가서 동네 안에서 공간 사진을 50장 찍을 때까지 돌아다니는 방법을 써볼 수 있습니다. 50장을 채우려면 결국 구석구석을 뒤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기 왠지 편하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생각보다 발견이 많았습니다.

 

자기인식: 나를 썸 타듯 알아간다

번아웃을 겪고 나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제가 저 자신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몇 시간 자야 다음 날 버틸 수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감정이 급격히 소진되는지, 무엇을 할 때 에너지가 회복되는지. 체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지만, 심리적 에너지(psychological energy)에 대해서는 백지였습니다.

심리적 에너지란 의사결정, 감정 조절, 집중력 유지 등에 쓰이는 내면의 자원을 뜻합니다. 신체 에너지처럼 쓰면 줄고 쉬어야 회복되는데,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과소비를 훨씬 쉽게 하게 됩니다. 자기조절 이론(self-regulation theory)에서는 이 자원이 유한하다고 설명합니다. 자기조절 이론이란 인간의 자원이 고갈되면 의지력과 판단력이 저하된다는 심리학 이론으로, 이를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고도 부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자기인식이 생기면 단순히 나를 '잘 쉬게' 하는 것을 넘어, 주변 자극에 덜 흔들리게 됩니다. 사무실 분위기, 주변의 기대, SNS 속 타인의 속도 같은 외부 자극이 예전만큼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 안에 기준이 생기면 비교 대상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나를 알아가는 방법으로 제가 유용하게 썼던 것은, 연애 초반에 상대방을 알아가듯 나에게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기분이 좋은지, 어떤 상황에서 에너지가 올라가는지, 어떤 사람과 있으면 지치는지. 이걸 노트에 적어두면 결국 나만의 룰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룰이 있는 사람은, 어떡하지를 어떻게든 되겠지로 바꾸는 연습도 훨씬 쉬워집니다.

실제로 자기인식(self-awareness)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번아웃 발생 빈도가 낮고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 높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회복 탄력성이란 어려운 상황을 겪은 후 본래 상태로 돌아오는 심리적 능력을 말합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닙니다. 다만 저는 방향 없는 열심이 얼마나 빨리 사람을 갉아먹는지를 몸으로 알았습니다. 지속 가능한 속도로, 나만의 케렌시아를 갖고, 나 자신을 알아가면서 사는 것. 이게 목표를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목표에 더 오래 닿아 있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일단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입 밖으로 내뱉어 보시길 권합니다. 처음엔 억지스러워도 괜찮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의료적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VW4KLM0U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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