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팀을 옮기기 전에 그 팀 선배에게 팀원들이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선배는 "성과가 뛰어나진 않아도 착한 사람들이에요"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착하기만 해서 뭐가 되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팀에 들어가 보니, 그중 한 명은 팀 전체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을 지켜보면서 결국 직장 생활에서 오래 살아남는 건 성과보다 태도라는 걸 처음으로 체감했습니다.

자율성과 스마트 기버: 매력적인 사람들의 공통점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된 패턴이 있습니다. 제가 관찰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자율성(Autonomy)의 수준이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자율성이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네가 뭘 해줘야 내가 행복하지"가 아니라 "내가 이걸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억울함이나 불평불만이 적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조직심리학자 아담 그랜트는 기버(Giver), 즉 주는 사람들을 연구하면서 두 부류를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셀프리스 기버(Selfless Giver)로,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고 타인의 요구에만 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래 지속될수록 번아웃(Burnout)에 빠지기 쉽습니다. 번아웃이란 지속적인 소진 상태에서 감정적, 신체적 에너지가 고갈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반면 스마트 기버(Smart Giver)는 다릅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면서도,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관심도 열려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함께 일했던 그 팀원이 딱 이런 유형이었습니다.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물잔이 비어 있으면 먼저 알아채는 사람. 그리고 그 행동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태도가 자연스럽게 연대감(Solidarity)을 만들어 냈습니다. 연대감이란 단순히 도움을 받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먼저 상대를 살피고 도울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스마트 기버가 가진 핵심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신의 욕구를 명확히 알고 있다
- 그 욕구의 충족 책임을 스스로에게 둔다
- 타인의 욕구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열려 있다
- 도움을 받을 때도, 줄 때도 기쁘게 한다
이런 사람들과 대화하면 마음이 편한 이유가 있습니다. 상대의 말을 자기 필터 없이 그대로 듣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꼬막 비빔밥 먹었는데 맛있었어"라고 하면, '혼자 자랑하는 거야?'가 아니라 "어, 맛있었겠다!"가 먼저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자연스러운 공감 반영(Empathic Reflection)입니다. 여기서 공감 반영이란 상대의 감정과 상황을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되돌려 주는 대화 방식을 말합니다.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의 연구에서도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높은 팀일수록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실수를 빠르게 수정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출처: 하버드 경영대학원).
비폭력대화: 욕구의 언어로 말하는 법
제가 직접 부딪혔던 벽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는 개념으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마셜 로젠버그가 개발한 이 대화 방법은, 인간의 욕구(Needs)를 대화의 중심에 두면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비폭력대화란 평가나 비난 없이 관찰, 감정, 욕구, 부탁의 4단계로 자신을 표현하는 대화 방식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으로 어려웠습니다. 저는 워낙 직설적인 편이고, 방어적인 기질이 있어서 남을 비판하는 데는 꽤 능숙했는데, 정작 제 욕구를 솔직하게 꺼내는 것이 훨씬 더 낯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제 마음보다 상대방의 반응을 더 신경 썼던 것 같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가 어떻게 볼까를 먼저 계산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욕구는 속으로 눌러두고 결국 불만으로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마셜 로젠버그의 핵심 통찰 중 하나는 욕구 충족의 방식을 다양화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제가 재미를 원한다면, 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대상과 수단은 하나가 아닙니다. 한국심리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욕구 충족 방식이 하나의 대상이나 수단에 고정될수록 갈등 강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제가 경험상 이건 정말 맞는 말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도 한때 특정 사람이 특정 방식으로만 제 욕구를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럴수록 관계가 더 팍팍해졌으니까요.
욕구 충족의 다양화를 실천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상대방에게 부탁해 본다
-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는다
- 제3자나 다른 관계에서 충족 가능성을 열어둔다
- 공동체 차원에서 함께할 방법을 제안한다
이렇게 대상의 다양성과 수단의 유연성을 동시에 열어두면, 사고의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 생깁니다. 사고의 유연성이란 하나의 정답에 집착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결책을 탐색하는 인지적 능력을 말합니다. 제가 팀에서 만났던 그 팀원도, 돌이켜 보면 늘 이런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도 있고, 팀이 원하는 것도 있다는 걸 알면서,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연스럽게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결국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거창한 덕목이 아니라, 내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자기 욕구에 둔감한 상태에서는 타인의 욕구를 진심으로 살피기가 어렵습니다. 비난 없이 원하는 것을 말하고, 상대의 욕구도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결국 오래 곁에 남는 사람이 됩니다.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오늘 한 번쯤 "지금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지?"를 조용히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