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찬 사람이 더 깊이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직장인이 되고 나서 한동안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뭐든 자신 있게 말하고 행동했던 대학 시절이 그리웠고, 매사에 우물쭈물해지는 제 자신이 영 못마땅했거든요. 그런데 인지심리학 연구들을 들여다보다 보니, 그 확신이 깊이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신념의 역설 — 확신할수록 얕아지는 이유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에서는 신념(belief)을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여기서 신념이란 태도(attitude)가 여러 차례 반복되어 굳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태도만큼 빠르게 변하는 것도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념이라는 말 자체가, 변하기 쉬운 것을 변하지 않을 것처럼 포장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겁니다.
제가 직장 생활 초반에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확신했던 것들 중 상당수가 몇 년 사이에 조용히 뒤집혔습니다. 그때마다 스스로 일관성이 없다고 자책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성숙의 과정이었습니다. 삶에는 정답이 없고, 누군가의 방식을 이렇다 저렇다 단정할 수도 없다는 걸 몸으로 배운 거니까요.
철학자 칸트가 강조했다고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감정을 약속하지 말고, 행동을 약속하라." 결혼식에서 "평생 당신만 사랑하겠다"고 말하는 건 감정을 약속하는 겁니다. 그 감정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데도요. 반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런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건 지킬 수도 있고, 못 지켰을 때 다시 개선할 여지도 생깁니다. 신념을 고수하는 것보다 신념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걸 경계하는 태도가, 역설적으로 더 단단한 자세라는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신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어쩐지 "고집스러운 사람"처럼 들리기 시작했다면, 그건 감각이 예민해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깊이를 만드는 진짜 조건 — 고민 빈도
사람의 깊이를 파악하는 데 자주 쓰이는 심리학적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신뢰에 대해 고민해보신 적 있으세요?"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여기서 핵심은 고민의 크기가 아니라 고민의 빈도(frequency)입니다. 빈도란 어떤 행동이나 생각이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가를 나타내는 척도로, 행복 연구에서도 행복의 크기보다 빈도가 더 높은 사람이 실제로 더 행복하다는 결과가 일관되게 나타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저도 처음엔 이게 무슨 차이냐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예요. 한 달 전에도, 일주일 전에도, 어제도 같은 주제를 고민했다면, 그때마다 상황과 시점이 다릅니다. 그 다양한 맥락 안에서 반복적으로 생각을 굴려본 사람만이 "이건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이건 끝까지 중요한 거구나"를 구분하게 됩니다. 그 끝에 남는 작은 결론이 바로 자기 철학이 되는 거죠.
반대로, 강렬한 경험 한 번에 생긴 판단을 끝까지 밀고 가는 사람은 어떨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수많은 예외들을 놓치게 되고, 고정관념(stereotype)과 편견(bias)이 두꺼워집니다. 여기서 고정관념이란 특정 대상에 대해 변화 없이 굳어진 인지적 도식(cognitive schema)을 말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오히려 깊이가 없어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정답을 빠르게 내놓는 사람"을 유능한 사람으로 봐온 탓에, 우리는 머뭇거리는 것을 약함으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번엔 내가 좀 그랬나?"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장기적으로 훨씬 단단하게 성장하더라고요.
깊이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확인해야 할 포인트는 이렇습니다.
- 같은 주제를 자주, 반복적으로 고민하는가
- "잘 모르겠다"는 말을 편안하게 사용하는가
- 자신의 이전 생각이 틀렸을 때 자연스럽게 수정하는가
- 강한 확신보다 가능성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가
자기인식 — 사주와 번아웃이 알려주는 내 신호
저는 사주 보는 걸 꽤 좋아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든 예측하고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 회피 성향(risk aversion tendency)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이 짙습니다. 위험 회피 성향이란 불확실한 상황에서 손실 가능성을 줄이려는 쪽으로 의사결정이 기울어지는 심리적 특성을 말합니다.
인지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평생 알고 싶어하는 것 두 가지는 가치(value)와 확률(probability)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어떤 방법으로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화폐가 발명된 것도, 사주와 점괘 시장이 커지는 것도, 결국 이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싶은 본능에서 출발합니다.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보면 된다"는 말이 오히려 현명하게 들리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확률을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 아는 것도 아닌, 그 어중간한 지점에서 사람은 가장 큰 설렘을 느끼거든요.
한국 사회는 정답이 정해져 있고, 이렇게 살라고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 들어가서, 좋은 직장 들어가야 한다고 말이죠. 열심히 남들이 말하는 대로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이해는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등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더 점과 운세에 기대게 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번아웃(burnout)도 이러한 자기 인식 부재라는 맥락에서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번아웃이란 장기간의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서적·신체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건 오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빨리 감지하는 사람과 늦게 감지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흥미로운 건, 번아웃이 오기 전에 자신의 감정 표현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게 가장 빠른 진단법이라는 겁니다. 울고 싶은 상황인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면, 감정의 통로가 막히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한국 사회는 특히 감정을 드러내는 걸 약함 혹은 무능함으로 보는 문화가 강합니다. 그래서 번아웃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 그걸 받아줄 수 있는 관계가 있는지가 결국 핵심입니다.
"나는 번아웃 한 번도 없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케이스일 수 있다는 것, 제가 직접 주변에서 몇 번 목격했습니다. 멀쩡해 보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훅 무너지는 사람들이요.
삶에 정답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불확실함 안에서 자기 자신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 이 두 가지가 결국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 같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제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어떤 행동을 반복할지 고민하는 것. 그게 신념보다 훨씬 단단한 자기인식입니다.
오늘 하루, 한 번쯤은 "내가 요즘 어떤 것에 자주 고민하고 있나"를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